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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atnoza tune | Trancepot

Trancepot | 센세이션 이야기

by machellin 202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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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호들갑 이후 맞이한 밀레니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꽤 규모가 큰 이벤트 하나가 시작된다. 아래의 트레일러 하나 보고 시작할까. 3분밖에 안되니 심심한 사람은 한번 보자. 보고 나서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 포스팅은 굳이 시간 죽이며 읽을 필요 없을듯하다.

 

Story begins

센세이션은 네덜란드의 ID&T 라는 회사에서 기획한 대규모 일렉트로닉 뮤직 이벤트다. 그냥 파티인데 규모가 어마 무시하게 컸던 것. 하지만 단순히 규모만 언급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90년대부터 시작된 EDM 트렌드가 고스란히 이어져 당대 내로라하는 유명 DJ들이 대거 라인업에 포진했던 이벤트다. 그래서 엄청 빠르게 그 이름을 알린 이벤트다.

 

Sensation White Edition

당시 센세이션 외에도 유명했던 이벤트로는 Trance Energy, 독일의 Love Parade 등이 있었다. 트랜스 에너지나 러브 퍼레이드는 그 수명이 짧았으나 센세이션은 2010년대 후반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다. 연도별로 센세이션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000 - 2002

이 시기 센세이션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DJ들은 워낙에 유명했다. 일단 EDM 씬의 트렌드 자체가 센세이션이 추구하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라인업에 포함된 DJ들의 음악이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음악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벤트 이름처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출발만 놓고 보면 그냥 판 크게 벌려서 신나게 노는 파티, 딱 거기까지였다. 딱히 다른 이벤트와 차별화되는 요소는 없었다.

 

그런데 2001년 센세이션에서 비즈니스 측면의 감을 잡고 성공적인 이벤트의 방향을 찾았다.

 

바로 Color.

 

센세이션은 화이트 에디션과 블랙 에디션 둘로 나뉘어 진행이 됐는데, 화이트는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화이트로 꾸며서 진행됐고, 블랙 에디션은 모든 것을 검은색으로 꾸며 진행됐다.

 

화이트 에디션을 예로 들자면, 암스테르담 아레나 축구장 전체를 백색으로 꾸미고 디제이와 스탭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의 드레스 코드도 화이트로 통일해 이벤트를 열었다. 온천지가 새하얀 가운데 각양각색의 조명 & 레이저가 사방을 비추기 시작하면 곧 이벤트 장소는 광적인 분위기로 물들고는 했다. 디제이도 사람들의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는 uplifting tune 들을 주로 플레이하는 디제이들로 라인업이 구성돼 분위기를 한없이 끌어올리게 했다.

 

블랙 에디션은 반대로 드레스 코드가 블랙이었다. 장소, 소품 역시 블랙이었고 다소 hard 한 분위기의 tune들이 플레이되어 보다 매니악한 분위기를 추구, 화이트 에디션과는 다른 매력을 갖췄다.

 

이미 당대 유명 디제이들을 라인업에 포섭해 컨텐츠의 퀄리티는 완벽했던 센세이션이 특유의 identity를 갖추면서 대성공의 징조를 보인 시기다.

 

 

2003

센세이션은 탑 레벨의 컨텐츠에 더해 드디어 확실한 컨셉을 찾았고, 해당 연도를 대표하는 anthem을 정해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 라인까지 갖추게 됐다. 2003년 앤썸은 (Sensation white anthem 2003) 모짜르트의 레퀴엠이 trance로 편곡되어 장엄하게 발표됐고, 이 해의 센세이션은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센세이션 이벤트로 기록된다.

 

백색으로 통일된 속에서 surrealism의 스테이지와 스탭 분장, 그리고 당대 최고 DJ들이 틀어대는 음악 속에서 클래식의 권위까지 입혀진 anthem 을 통해 명실상부 world leading dance event를 표방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센세이션은 내 버킷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2004

2004년의 anthem 은 Karloff 의 Carmina Burana 중 O fortuna 가 트랜스로 편곡되어 릴리즈 됐다. Carmina Burana는 아버지가 자주 들으셔서 자연히 나도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곡이었는데, 이 클래식 음악이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바뀌어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걸 듣자니 신기했다. 어떻게 클래식을 이렇게 바꿔버릴 수 있나 싶었다.

 

이벤트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여전했고, 흐릿한 동영상으로 접하는 센세이션의 영상들로 인해 이때부터는 센세이션이 내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하게된다.

 

 

2005

2005년의 앤썸은 Armin van Buuren 이 담당했다. 최전성기로 향해 가던 아민이 클래식에서 바톤을 이어받아 서사적인 음악을 써냈다. 2003년, 2004년에 이어 이벤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 정점을 찍었다.

 

이때 센세이션은 네덜란드뿐만이 아니라 벨기에와 독일에서도 열렸다. 그런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기획 의도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쳤다. 물론 돈 벌자고 기획한 이벤트이지만 매니악한 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센세이션은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그 상징적 지위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서서히 팬들의 이탈을 경험하게 됐다.

 

 

2006

물론 2006년에도 성공을 거뒀다.

센세이션은 매년 이벤트의 전반적인 컨셉을 업그레이드했는데, 2006년부터 신규 컨셉은 네덜란드에서, 바로 전 해의 컨셉으로는 Sensation International이라는 이름 아래 해외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앤썸이 2곡으로 늘어나면서 상징적인 이미지가 매우 희미해졌다.

 

 

2007

그리고 2007년에 이르러서는 대표 앤썸을 내놓지 못한 채 트레일러로 홍보를 대신하게 된다. 단어 뜻 그대로의 명곡을 척척 내놓으면서 EDM 씬을 뒤흔들던 존재감은 사라지고, 압도적인 스케일과 볼거리, 그래도 아직은 훌륭한 DJ라인만을 가진채 세계 여러 곳의 프로모터들과 접촉하는데 집중한 시기가 이 때다.

 

 

2008-2009

그리고 2008년부터는 아예 컨셉을 명시하면서 show 수준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것에 공을 많이 들였다.

2008년The show

2009년Wicked Wonderland

 

 

2010 - Celebrate Life with House

2010년에는 아예 음악의 컨셉 자체도 하우스로 변경하면서 트랜스 위주였던 기존의 컨셉을 완전히 뒤집었다. 대서사시와도 같은 다소 진지한 분위기에서 보다 즐겁게 가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

 

 

2011 - Innerspace

2011년 센세이션의 비쥬얼도 엄청났고.

 

 

2012 - Source of Light

그리고 포스팅 처음에 소개했던 2012년의 Source of Light. 이 영상을 편집한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생각한다. 처음 영상을 봤을 때 너무 멋지다 싶었다. 이쯤 되어서는 한번 가보고 싶다가 아니라 미친 듯이 가고 싶을 정도에 이르렀고 때마침 2012년에 일산 킨텍스에서 센세이션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센세이션의 컨셉은 The Ocean of white 였다. 일찌감치 티켓팅해서 드디어 가봤고, 압도적인 스케일과 화려함에 환호했다. 환호는 했는데, 뭔가 좀 찜찜했던 것이 생각보다 감동이 없었다. 열정의 시기를 이미 지났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버킷리스트에 줄 하나를 그어 봤다. 아래 영상은 The Ocean of White 컨셉의 영상.

 

 

2013 - 2015

2013년Into the Wild, 이건 뭐 이젠 서커스인가 싶었고, 2014년Welcome to the pleasuredome, 2015년 the Legacy. 재미와 즐거움, 볼거리는 비약적으로 늘었으나 여전히 감동적인 장면은 없어 보였다.

 

 

2016

2016년의 Angels and Demons는 꽤나 참신하게 다가왔다. 컨셉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2017년.

The Final.

창작의 한계에 부딪혔던 것일까.

2017년 암스테르담 센세이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새로운 컨셉은 없다고 발표했다.

 

 

The end of stories.

센세이션이 막을 내리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소수 trance 뮤지션들이 해 먹어도 너무 많이 해 먹었다. 일부 성공한 뮤지션들이 본인들의 레이블을 설립하면서 음악의 프로듀싱은 레이블에서 고용한 전문 프로듀서에게 맡기고, show up에만 치중한 것이다. 그리고 본인들의 방송, 팟 캐스트, 차트를 만들어 EDM 씬을 좌지우지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상업적 이득은 취했지만 창작 pool 이 말라버렸다. 작곡마저 산업화하여 월급을 지급했으니, 일생일대의 명곡 탄생이라는 일종의 사명감 내지는 큰 목표를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게다가 여럿이서 한 명에게 곡을 몰아주다 보니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주기가 말도 안 되게 짧아졌고, 급기야 이런 행태를 비판하며 프로듀싱을 중단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새롭게 등장하는 trance DJ들은 소수 성공한 뮤지션들의 방송이나 차트, 레이블을 통하지 않고서는 커나갈 수 없다는 현실 굴복하게 됐다. 이들은 소수 탑 뮤지션의 스타일을 카피하거나 아예 기존의 팝 음악 등을 편곡해 밥벌이를 해나갔다.

 

이렇게 인재풀이 서서히 마르면서 센세이션 기획자들은 리스트업에 올릴 뮤지션이 매번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매번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만이 플레이되면서 더 이상 사람들은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핵심 컨텐츠로 승부를 보지 못하니, 아예 컨텐츠를 바꾸고 볼거리에 치중하다, 한계를 느낀 채 두꺼운 막을 잡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돈은 벌었으나,

판이 망가지니,

이젠 접어야지.

 

그렇게 센세이션의 자리는 이제 UMF 나 Tomorrow Land 같은 다른 대형 이벤트들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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