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정주행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웃기고, 따뜻하고, 별 얘기 아닌데 괜히 울컥하기도 한다.
제주 촌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말투 하나, 그저 평범한 풍경 같은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도 내 이야기 하나쯤 꺼내보려고 한다.
2015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다. 호치민 3군, 다섯 층짜리 서비스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없었고, 베란다 밖으론 오토바이 경적이 끊이질 않았다. 불편했지만, 낯설었던 만큼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여길 왜 왔지’ 싶으면서도, 묘하게 버틸 만했다.
2018년, 나는 2군 마스테리로 이사했다.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번화한 동네지만, 그땐 타오디엔이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베트남 친구들도 “거기가 어디야?” 하고 묻기 일쑤였고, 택시 기사에게는 지도를 켜서 손가락으로 찍어 보여줘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동네가 좋았다.
조용했고, 느긋했고, 걷기 좋은 동네였다. 아내와 저녁 먹고 마스테리 앞 거리를 산책하고, 간단히 맥주 한잔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시간들. 그 시절의 타오디엔은 지금보다 덜 정리됐고, 그래서 오히려 더 정감 있었다.
그때는 육교도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있는 그 육교가 없어서, 메가 마켓 하나 가자고 유턴을 네 번씩 해야 했다. 돌고 돌던 그 길이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했다. 그런 게 이 동네의 리듬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마스테리에 들렀다. 아들을 학교에서 데려와서 메가 마켓 쪽으로 향하는 길. 육교를 건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예전 생각이 났다. 아내와 함께 가던 길 위에, 이번엔 아들과 나란히 서 있었다. 동네는 변했지만,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리에는 새로운 상점이 가득했고, 카페는 몇 배는 늘었고, 사람들의 표정도 어쩐지 달라 보였다. 타오디엔은 이제 호치민에서 가장 '핫한' 동네 중 하나가 됐다.
변화는 도시만의 것이 아니다. 그 시간 속에 내가 있었고, 그만큼 나도 변했다는 걸. 이따금 이렇게, 같은 자리를 다시 밟을 때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타오디엔을 떠나 다른 곳에 살고 있다. 주거지도, 동선도, 생활 리듬도 달라졌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도시에 적응한 게 아니라, 이 도시가 내 안에 조금씩 쌓여온 게 아닐까 하고.
'L I V | 베트남 들여다보기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방학, 캠프까지 꼭 보내야 할까?...주재원 아빠의 솔직한 고민 (0) | 2025.05.12 |
---|---|
'빨리빨리'에 지친 내가 찾은 '느릿느릿'의 위로 (5) | 2025.04.17 |
베트남에서 자외선을 막는 가장 똑똑한 방법 (4) | 2025.04.15 |
왜 베트남이 '소자본 창업'의 블루오션이 됐나. (1) | 2025.04.12 |
합병 앞둔 아시아나항공...마일리지 신용카드 연장해도 될까요? (4) | 2025.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