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치민은 이상한 도시다. 누군가는 아직 개발도 덜 된 동남아 도시라 하고, 또 누군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창업의 현장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곳에 조금만 살아보면 알게 된다. 돈이 많지 않아도, 거창한 배경이 없어도, 진짜 작고 현실적인 사업이 가능하다는 걸. 그래서 지금 호치민은 조용한 창업자들의 도시다. 한국에서라면 생각도 못 했을 시도로, 몇 백만 원의 자본으로 나만의 가게,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에선 점점 늘고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건 온라인 판매다. 특히 정리·수납 용품 같은 실용적인 제품은 현지에서도 점점 수요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쓰는 이케아 스타일의 정리함이나 속옷정리박스, 냉장고용 보관함 같은 것들은 깔끔한 삶을 추구하는 베트남 젊은 층에게 은근히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 물건을 소싱해서 호치민에서 인스타그램, 틱톡, 쇼피(Shopee) 같은 플랫폼으로 판매하는 구조는 소자본 창업의 전형이 됐다. 초반엔 제품 몇 개만 들여와서 반응을 보고, 괜찮으면 종류를 늘리면 된다. 창고도 필요 없고, 사무실도 필요 없다. 집 한 켠에 두고, 주문이 오면 직접 포장해서 발송하면 그게 곧 사업의 시작이다.
또 하나 뜨고 있는 분야는 음식이다. 한국 음식은 여전히 프리미엄 이미지다. 다만 레스토랑에 가서 먹기엔 비싸고 무겁다는 인식이 있어, 최근엔 밀키트나 배달 위주 소형 한식 브랜드들이 주목받고 있다. 김치볶음밥, 떡볶이, 제육 같은 간단하지만 맛있는 메뉴들. 이건 베트남 사람들뿐 아니라 호치민의 수많은 한국 교민과 일본인, 대만인, 심지어 유럽인들에게도 인기다. 공유 주방을 빌려 하루 몇 시간씩 운영하고, 배달 앱에만 등록해 수익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한 달에 수익이 몇 백만 원에 불과해도, 고정비가 거의 없다 보니 운영이 가능한 구조다.
그 외에도 여성 1인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뷰티 서비스가 강세다. 네일, 속눈썹, 간단한 피부관리, 출장 마사지까지. 자격증이 있거나 손기술이 있다면 집이나 소형 오피스텔에서 소규모로 시작할 수 있다. 한국식 서비스는 현지인들에게도 특별하게 느껴지고, 한국 교민 고객들은 이미 수요가 탄탄하다. 초반엔 장비와 재료 준비에 500만 원 정도만 있어도 가능하고, SNS를 통한 홍보만 잘하면 단골 확보도 어렵지 않다. 특히 현지 언어가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도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시작이 부담스럽지 않다.
호치민의 부모들 사이에선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엄마들이 운영하는 놀이 수업이나 체험 교실, 한글 교육 등은 오히려 신뢰 요소로 작용한다. 미술놀이, 만들기 수업, 교구 대여, 아이 요리 체험 등은 큰 공간 없이도 가능하며, 하루 한두 타임만 운영해도 수익 구조가 만들어진다. 현지 중산층 이상 가정은 아이에게 ‘새롭고 창의적인 경험’을 줄 수 있다면 가격보다도 가치에 더 집중한다. 이 부분은 오히려 한국보다도 적극적일 때가 많다.
이처럼 호치민에서의 소자본 창업은 대부분 아주 작게 시작하고, 고객의 반응을 살핀 다음 점점 키워나가는 구조다. 그래서 무리하게 돈을 쓰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 달에 30~50건 정도의 주문만 받아도 월세 내고 생활비 보탤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쉽게 돈을 버는 건 아니다. 마케팅도 직접 해야 하고, 배송, 고객 응대까지 다 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베트남에서는 한 번 뜨면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SNS 기반 쇼핑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많아 확장 가능성도 크다.
물론 조심할 점도 있다. 사업자 등록, 비자 문제, 현지 파트너 계약 등은 반드시 사전에 체크해야 한다. 베트남 법은 단순한 듯 복잡하고, 자주 바뀌기 때문에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초기엔 너무 큰 꿈을 꾸기보다는, 작은 실험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도시의 감각을 믿는 것이다. 호치민은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좋아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특별함’을 담고 있다면, 이곳에선 반드시 누군가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소자본 창업을 꿈꾼다면, 호치민은 아직도 기회의 땅이다. 돈이 적다고, 언어가 부족하다고 망설일 필요 없다. 이미 누군가는 당신보다 더 부족한 상태에서, 이 도시 한복판에서 조용히 자기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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