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속 ‘한국 마트’ 이야기
베트남에 사는 교민이라면 한 번쯤 K-MARKET, 예전 이름으로는 K마트에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라면, 김치, 간장, 고추장 같은 한국 식품은 물론이고 주방세제나 화장지 같은 생필품까지, 한국에서 쓰던 것들을 그대로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엔 단순히 반가운 마음에 들렀다가, 점점 자주 가게 되는 이 마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유통기한이 임박한, 이른바 ‘땡처리 상품’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왜 여기엔 이런 세일 제품이 많을까?’ 하고 의아했지만, 알고 보니 꽤 흥미로운 배경이 있었다.
K-MARKET을 만든 고상구 회장은 2002년 베트남에 진출해 처음엔 백화점 사업을 시도했지만 실패를 경험한 후 방향을 바꿨다. 그는 한국 식품을 대량 수입해 베트남 현지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B2B 사업에 집중했다. 컨테이너 단위로 수입되는 제품들은 베트남의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납품되었지만, 문제는 재고였다.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들이 제때 판매되지 못하면 창고에 쌓이기 마련이고, 결국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방식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2007년, 하노이에 첫 번째 K마트 매장이 문을 열었다. 즉, 이 마트의 시작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고를 소진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창고에 쌓인 제품을 아무렇게나 진열한 것은 아니었다. 고 회장은 이왕 마트를 열 거라면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인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분수대와 파라솔까지 설치해 마치 한국의 대형마트처럼 꾸몄고, 고객들이 신기해하며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K마트는 이후 ‘K-MARKET’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되며 점점 매장 수를 늘려갔다. 베트남 전역에 14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지금도, 이 마트는 여전히 땡처리 상품을 주요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품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인기 품목이 아니라 오래된 제품들은 세일 코너로 빠지며, 오히려 이 코너를 일부러 찾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K-MARKET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제품이 굉장히 빠르게 들어온다는 점이다. 한때 한국에서도 비싸게 팔리던 스타벅스 병커피가 베트남 K마트에 먼저 들어왔을 때, 주변에서는 “이 비싼 걸 누가 사 먹겠냐”고 했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교민뿐만 아니라 베트남 현지 젊은 소비자들까지 반응이 좋아, 이 전략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특징 덕분에 K-MARKET은 단순히 ‘세일하는 마트’가 아니라, 가면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는 곳, 득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되었다. 교민들 사이에서도 “K마켓 가면 뭐 재밌는 거 있을지도 몰라”라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K-MARKET은 단순한 쇼핑 장소가 아니다. 고국의 물건을 만나는 반가움, 합리적인 가격에 세일 상품을 구입하는 즐거움, 한국보다 먼저 접하는 신상 제품의 설렘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트 운영의 효율성과 재미를 동시에 챙긴 K-MARKET의 전략은 베트남 유통 시장에서 꽤나 독특하고 성공적인 사례로 남는다. 다음에 K-MARKET에 들를 일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세일 코너를 한 번쯤 살펴보자. 의외의 보물을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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