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 I V | 베트남 들여다보기/일상

운동화 이야기

by machellin 2018. 11. 14.
반응형

제가 종종 챙겨서 듣는 팟캐스트 방송이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접하는 물건이라든지 행동에 관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는 방송인데요, 얼마 전 운동화를 주제로 방송이 진행되었습니다.

 

방송을 듣고 있자니 어렸을 때 신었던 신발의 추억부터 해서 중학생 시절에 신발 잃어버렸던 일까지 떠올라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이유가 뭐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학교에서 농구화를 신지 못하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가 유행하고 워낙 고가의 신발이다 보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명찰에 두발에 신발에 뭔 단속이 그리도 많았었는지요. 떠올려 보면 학생 시절이 아니라 스파이 시절을 보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기도 합니다.

 

학창 시절뿐만이 아니라 N모사에서 잠시 근무했던 기억도 떠올라 재미있었습니다. N 모사의 라이벌인 아디다스 제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적지만, 두 회사 모두 비즈니스 전개 과정이 비슷합니다. 초기에는 러닝에 방점을 찍고 제품을 개발했지요. 따라서 초기에는 아웃솔의 기능과 경량화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점점 기능이 확장되면서 분화가 되어 Running, Sportware, Tennis, Trainning 등등으로 세그먼트가 나뉘었고, 패션이 결합하면서 Mens, Womens로 카테고리가 나뉘게 되었죠.

 

 

에어백 (Air Bag) 을 삽입하며 마켓을 강타한 에어 맥스 시리즈

 

나이키에서 에어백 (Airbag) 을 삽입한 신발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경쟁의 패러다임은 경량화에서 쿠셔닝으로 옮겨갔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탄성이 좋은 아웃솔과 미드솔을 개발하는데 집중했고, 발바닥의 쿠셔닝에서 선수를 뺏겼으니 리복 같은 회사는 펌프 시스템을 개발해 발 전체를 감싸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기도 하면서 한창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나이키는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개념을 찾았습니다. SHOX 를 개발하면서 아웃솔 기능 향상에 집중을 했는데, 사실 시장의 반응이 에어백 때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쁘지가 않았으니까요.

 

 

따라서 기능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Luna foam 을 개발했는데요, 루나 시리즈는 시장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루나 폼은 일단 가벼웠고, 체중이 실리는 특정 포인트에만 삽입하면 되니 크기도 작았던 데다가, 밀도가 높아서 두껍게 만들 필요도 없었습니다. 쿠셔닝은 좋지만 무거웠던 에어백이나 무겁고 디자인까지 하기 힘든 샥스를 개선하기에 최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이키의 루나 시리즈를 보면 신발들이 날렵하게 이쁜 모델이 많았습니다.

 

 

이쁜 디자인이 많았던 나이키 루나 시리즈

 

 

당시 아디다스에서는 헥사 구조의 변형된 에어백을 채택해 아웃솔과 미드솔 사이에 집어넣거나, 아웃솔의 구조를 변형해 탄성을 높이는 등의 대응을 했지만 나이키가 치고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나이키는 쿠셔닝에서 어느 정도 개선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자 바로 아웃솔의 유연성에 포인트를 찍고 제품 개발 드라이브를 시작한 것이죠.

 

 

아웃솔이 벌어지도록 설계하여 저항을 줄인 디자인

 

보다 말랑말랑하면서 내구성이 좋은 소재를 찾아 헤매고 적용해 나아갔는데, 핫나이프 (Hot Knife) 라는 기술을 통해 아웃솔이 극단적으로 꺾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발의 toe 부분을 잡고 위로 꺾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Vera 부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발 혓바닥) 까지 toe 가 닿을 정도의 유연성을 구현해 내기도 했지요. Hot Knife 는 아웃솔이 땅에 닿는 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아웃솔의 3/4 높이까지 순간적으로 녹이며 칼집을 내는 개념입니다. 이 경우 러닝 시 아웃솔이 꺾이는 타이밍에서 신발 자체의 저항이 적어지니 훨씬 러닝이 편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 까지도 개선점을 찾아야 하니 직원들은 근무할 때 반드시 운동화를 신어야 했고, 사내에서 러닝을 장려하는 문화가 뚜렷했습니다. 트레드 밀에서 뛰고 있을 때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사람과 동급으로 취급해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고, 실제 트랙이 사옥 앞에 있어서, 트랙 위에서의 러닝을 장려했습니다. 그리고 마라톤 대회 참가는 사측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습니다. 회사에서 개발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운동화를 직접 신고 뛰어보아야 장단점을 찾을 수 있다는 논리였지요. 그래서 만우절에는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경쟁사 분석이라는 농담과 함께요.

 

 

이렇게 극단까지 몰아붙인 아웃솔의 개선, 개발이 한계에 부딪히자 그 후로는 갑피에서 차별화의 포인트를 찾았습니다. 신발에서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 갑피입니다. 아웃솔이야 형태 그대로 틀을 짜고 찍어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갑피는 봉제사들이 일일이 갑피를 봉제해야 했다 보니, 봉제 선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제조 원가 절감의 핵심 과제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겟 마켓 별로 가죽 사용에 제한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도 시장의 경우는 소가죽 대신 돼지가죽으로 갑피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또 돼지가죽은 가공이 힘든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퀄리티가 일정하지 못한 데다가, 크기도 작아 아무래도 공정과 리드타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자재였습니다.

 

 

이렇듯 갑피 파트는 제조 원가 상승의 주요인이 되기도 하고, 타겟 마켓에 따라서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요인들이 많았기에, 이 갑피 부분에 자동화와 개선을 꾀하면서 플라이얀 (Fly Yarn) 기술이 나오게 됩니다. 플라이얀 기술은 봉제가 필요한 부분에 시작점과 끝부분이 있으면 각 점을 한 땀 한 땀 꿰매서 잇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에 강력하게 태킹을 한 다음 바늘이 훅 끝 지점으로 옮겨가 마무리 태킹을 하여 두 지점을 잇는 방식입니다. 실이 마무리 부분으로 훅 날아가는 듯한 방식이어서 플라이 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기술은 봉제가 필요한양 포인트 사이에 존재하는 실의 텐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계가 해치웁니다. 여러 명의 봉제사가 필요 없게 되기 때문에 인건비는 세이브가 됩니다. 또는 신세틱 소재를 갑피에 적용해 디자인 포인트는 레이저로 깎기도 했습니다. 작업대에 올려놓고, 버튼 띡, 지이잉- 치지지직 하면서 깎아버리는 겁니다. 사람 한 명이면 됩니다. 레이저로 깎는 방식은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구현하는 데 좋기도 했습니다. 신세틱 소재를 여러 레이어로 구성해, 각 레이어마다 다양한 칼라를 입혀 놓는 것이죠. 이 칼라들은 레이저가 소재 표면을 깎아내는 정도에 따라 겉으로 노출되게 되어 있어, 여러 소재를 붙이지 않고도 다양한 칼라를 구현 가능하게 해 줬습니다.

 

 

핫멜트 (Hot Melt) 라는 기술을 통해 여러 레이어의 소재를 파트 별로 그냥 붙여버리는 기술도 나오게 됐습니다. 그네들의 기밀이라 자세한 기술은 힘듭니다만, 디자인 때문에 여러 레이어의 소재를 꿰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제품이 투박해지고 이쁘지가 않습니다. 보다 나은 디자인을 원하는 디자이너와 보다 최적화된 생산 방식을 추구하는 엔지니어 사이에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되는 것이죠.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핫멜트를 사용하면 위치에 맞춰 파트 별 소재를 올려놓고 열만 가하면 각 파트가 서로 붙습니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고 인건비도 세이브됩니다. 그런데 핫멜트 개발 초기, co-worker 가 테스트한답시고 뜨거운 물에 빨아봤더니 각 레이어가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주르륵 떨어지는 이슈가 있었습니다. 문제점을 찾아내어 다행이었지만, 당장은 일거리가 늘어났기에 당시 팀에서 신발로 수프를 만들어 먹으려 했던 것이냐는 조크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여튼 이렇게 진화하기 시작한 갑피는 최근에 Fly Knit 로 오면서 개선의 정점에 달한 것 같습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갑피 전체를 짜버리자. 가볍고, 기계가 다 해주면서 디자인도 예쁘잖아. 모르긴 몰라도 플라이 니트 기술이 적용되면서 불량률도 현저히 낮아졌을 것입니다. 아디다스도 아예 갑피 전체를 knit 로 짠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최근에는 아예 socks 형태에 아웃솔만 붙인 운동화까지 스토어에서 보이고 있네요.

 

 

아예 봉제선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작정한 듯 아디다스 특유의 삼선 마크나 나이키의 Swoosh 도 기존의 봉제 방식이나 고주파로 붙여버리는 방식에서 탈피해 스프레이 작업으로 대체하는 추세가 눈에 띕니다. 제가 보기에는 갑피에서 더 이상 차별 포인트를 찾아내기가 힘들 것 같은데, 조만간 이들의 경쟁 포인트는 다시 아웃솔로 옮겨 가는 걸까요.

 

 

플라이 니트 제품. Swoosh 마저도 스프레이 작업으로 대체해버렸다.

 

기능과 패션은 공존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능성에 기반한 차별화와 디자인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이게 힙한 거야 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이렇다 보니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마케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이들이 마케팅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케팅을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혼신을 다해 마케팅에 집중하는 것이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아디다스 입장에서는 스트릿 같지만 기능도 우수하다는 걸 소비자 뇌리에 심어야 하고, 나이키는 뭔가 운동 그 행위 자체에 더 적합할 것 같지만, 우리도 힙하다라는 걸 어필해야 합니다. 이 둘을 잘 버무리려면 마케팅의 힘이 없으면 안 되고, 그렇게 운동화는 더 이상 그 목적뿐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를 그 안에 담아나가는 것 같습니다.

 


│by machellin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