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베트남에 왔을까요.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소설 형식을 빌려와 연재를 할 수도 있고, 대여섯 편은 나오겠다 싶습니다. 혹은 논리적인 척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한인 사회라는 것이 굉장히 좁습니다. 약간의 clue 만으로도 대번에 누군지 알아낼 수가 있어요. 업무 얘기를 두리뭉실하게 쓸 수밖에 없네요.
게다가 와잎느님께서 제 글을 모니터링 하십니다.
이러면 또 덜어내야 하는 내용이 꽤 됩니다. 라면 세 개 같이 끓여서 이건 니 거, 이만큼은 니 거~ 덜어주고 나니 막상 먹을 게 별로 없는 거죠.
출장을 갔었어요.
원래는 일주일 예정이었습니다.
로컬에 발을 디뎠죠.
그러자 이런저런 핑계로 업무가 하나, 둘 날아왔어요.
2주에서 한 달로 그리고 석 달로 출장 기간이 늘어나네요.
시발 사람을 하나 더 보내든가.
혼잣말을 하며 출장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
출장은 초기만 바쁜 법이죠.
초기에 방향 잡고 부지런히 디렉션을 내리면 그 후로는 flow 만 체크하면 됩니다. 한숨 돌리는 페이스에 맞춰 관심을 돌리니 로컬이 눈에 들어왔어요.
절대 부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녔어요.
무려 캐시가 잠시도 머물러 있지를 않았습니다. 오늘만 사는 건지, 저축은 쌀국수에 말아먹고 버는 족족 쓰고 있더란 말입니다.
대졸 초임이 30만원인데 계속 쏟아지는 사회 초년생들이 곧 150을 받고, 카드까지 만들어서 미래 급여까지 남김없이 끌어다 쓰면 어떻게 될까에 생각이 다다랐습니다. 쉽게 암산해도 4천만 명이 25세 이하인데, 얘들이 애를 낳으면 인구가 몇 명이 될 것이며, 돈 아끼자며 18평 집에 4-5명씩 낑겨 사는 애들이 하나 둘 제자리 찾아 나가기 시작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도 A4 에 끄적여 보긴 개뿔, 그냥 눈앞에 그려졌어요.
베트남은 뭔가 끓고 있어서 살짝살짝 넘치는 중입니다.
아직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이유든 사회 제도적 문제가 되었든 무언가에 살-짝 눌려있는 느낌이에요. 근데 조금만 들쑤시면 끓어넘치던 에너지가 그냥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호치민 시내를 나가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그냥 정신이 없습니다. 사람에 개발에 관광에 도시가 터져 나가는 중이에요.
/
자주 서울에 갑니다.
5시간이면 도착하니까요.
베트남 가며 동생에게 주고 간 차를 타고 나오면서 길거리를 바라봅니다. 그거 아세요? 죽은 나라 같아요. 일부 핫 플레이스와 도로만 미어터지지 길가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 놓칠까 가슴 졸이며 걷던 길거리가 아니에요. 숫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극도로 활기가 떨어졌어요. 에너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그랬습니다.
9 to 4 에서 운 좋은 날은 9 to 12 로 회사에서 consume 당했었어요. 퇴근 후는 차치하고 주말에도 에너지가 바닥났어요. 저처럼 극단적인 예가 많지는 않겠죠. 근데 집에 일찍들 들어가세요? 몸에 활기가 돈다 느껴본 적이 언젠지 곱씹어 보세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개개인 모두의 능력이 모자라 건강을 담보로 잠재력까지 끌어다 강제로 투입하고 있어요. 한 가정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또 하나의 비상 노동력도 맞벌이에 이미 동원된 사회에요. 외부 충격이 있으면 우리들 보금자리인 가정은 그걸 어떻게 견뎌 낼까요.
내가 덜 원할게.
내가 삶의 기대치를 낮출 테니 제발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이죠. 워라벨. 워라벨. 착취를 허할 테니, 저녁이라도 달라. 그렇게 허우적대다 베트남에 왔더니 10시면 세상부터 잠듭니다. 도시가 잠들고, 자영업자가 잠드니, 나도 잘 수밖에요. 10시면 늦은 시간이니, 8시면 집에 있어야죠. 6시면 슬슬 퇴근합니다.
1년이 52 주고 일주일에 대충 2권을 읽으면 1년에 100권 언저리로 책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1년에 서른 권을 보기가 벅찼습니다. 씻고 밥 먹고 음악 들으며 몸을 뉘여 책을 뒤적거릴 시간만 부족했을까요. 몸 뉘일 곳 마련할 통장 잔고가 부족해 몇 십 년을 일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죠.
그런데 2년 일하면 집이 하나 생기고, 4년 일하면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고, 6년 일하면 메이드 방까지 딸린 집 대문 비밀번호를 정할 수 있어요. 저녁 7시면 누르게 될 비밀번호 말이죠. 그 집에서 밥해 먹고 와잎느님이랑 수다 떨다 책 보며 일찍 잠들고 싶었어요.
요는.
생글생글.
잠 좀 자고 싶어서 베트남 왔어요.
│by machellin
'L I V | 베트남 들여다보기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인 가구 베트남 주재원 가계부 (월 고정비 공개) (0) | 2023.02.15 |
---|---|
[ 베트남 연봉 정보 ] 2022년 베트남 직업별 연봉 수준/연봉테이블 (0) | 2022.07.16 |
모든 것을 가리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는 옷 아오 자이 (Ao Dai) (0) | 2022.07.05 |
베트남 호치민 코로나 백신 접종 후기 (0) | 2021.08.10 |
운동화 이야기 (0) | 2018.11.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