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Great Depression.
대공황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도 깊었던 경제위기였다.
1929년 시작된 이 경제위기는 곧 세계를 덮쳐 1939년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지속됐다. 워낙에 지독했던 경제위기였기에 항상 위기가 닥치면 회자되는 단어가 대공황이다. 중국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요즘 어김없이 거론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대공황 시기 부터 2020년 현재까지, S&P500 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졌던 날들을 살펴보자. 단 하루 동안 떨어진 폭을 기준으로 잡고, 가장 낙폭이 컸던 날을 1위에 놓은 다음, 순서대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1987년 10월 19일 -20.5%
1929년 10월 28일 -13.0%
2020년 3월 16일 -12.0%
1929년 10월 29일 -10.2%
1929년 11월 6일 -9.9%
2020년 3월 12일 -9.5%
사흘전인 3월 16일은 Top3 안에 들고,
일주일 전인 3월 12일은 Top6 다.
90년의 역사 속에서 3번째로 큰 낙폭과 6번째로 깊은 낙폭이 지난 일주일 새 기록됐다.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일까.
위기의 징후
경제 위기가 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경기가 좋지 않다? 회사가 어렵다? 장사가 잘 안된다? 각자의 상황에서 나름의 판단 기준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경제 위기라는 것은 사회 전반을 덮친다. 피아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경제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일단 피하고 본다. 경제 위기에 취약한 위험 자산은 팔아버리고, 나의 부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을 찾아 꼬옥 움켜쥔다.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는 금을 모아놓던가, 국가에서 그 이자 수익율을 보증하는 국채 같은 것들을 사던가. 아니면 절대 망할 것 같지 않은 나라의 돈, 즉 미국의 달러를 사서 모아놓고 좋은 때가 오기만을 기도한다. 그러면 금, 채권, 달러는 무슨 돈으로 사서 모을까.
모아두었던 급여를 탈탈 털어 사던가, 불경기에 실적이 떨어질 게 확실해 보이는 기업의 주식을 팔거나, 높은 이자율에 혹해 사뒀던 등급 낮은 채권 등을 팔아서 산다.
따라서 만약에.
안전 자산인 금의 가격, 달러의 환율, 미 국채의 가격이 상승하고,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주식, 채권 등의 가격이 떨어지면 "앞으로 경기가 안 좋아질라나..." 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동시에 일어나면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왜
2020년 3월 19일.
다우지수 20,000선 붕괴
나스닥 7,000선 붕괴
코스피 1500선 붕괴
코스닥 500선 붕괴
대미 환율 1,300원 육박
금 값 고점 대비 -11.4% 폭락
도대체 왜 최근에는 주가도 폭락하고, 안전하다던 금 값도 떨어지고, 미국의 국채 가격도 떨어지고, 모든 게 다 떨어질까. 왜 달러만 빼고 전부 가치가 무자비하게 폭락하고 있을까. 그저 바이러스가 무서워서일까.
미국인들이 온갖 예금에 대출까지 더해도 모자라 영혼마저 털어넣고 구입한 나의 집. 인생의 영수증이나 마찬가지였던 나의 스윗 홈. 그 소중한 부동산의 가치가 녹아 없어져버리던 시절. 2008년 금융위기 때의 공포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더 큰 것일까.
역사상 최장 기간의 호황
11년전, 월가의 탐욕에서 비롯된 금융위기의 폐허 속.
나흘에 걸쳐 조금씩 다우 지수가 상승해 약 10% 정도 주가가 올랐다. 그리고 이 나흘간의 10% 상승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호황의 시작점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상 최장 기간의 호황이 2020년 3월의 혼돈을 잉태했다.
11년에 걸친 기간 동안 꾸준히 우상향 한 주가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애플과 아마존의 주식이 수많은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줬고, 버라이즌과 컴캐스트, AT&T의 주식은 쏠쏠한 배당금으로 열심히 일해왔던 은퇴자들의 편안한 노후를 책임졌다.
투자의 성공은 관성을 지닌다.
자산이 복리로 불어나는 마술을 경험한 이들은 자신이 앞으로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의 수입을 현재로 끌어와 투자를 이어갔다. 뭔가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시작했고, 쉽게 말하자면 일단 빚을 내서 주식을 사들였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증시의 상승은 이내 일말의 불안한 마음마저 지워버렸을 것이다. 탐욕이 지배하는 월가는 말할 것도 없다. 부동산 유틸리티 기업들은 천정부지로 가치가 치솟은 자산에서 고정적으로 임대 수입이 들어오자 달달한 수익에 취했다. 그리고 곧 그 달콤한 수익을 위해 레버리지 효과를 최대로 활용했다. 월급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동안 애플과 아마존의 주가가 훨훨 날아오르는 걸 지켜본 직장인들은 빚을 내 주식을 사기 시작했고, 일단 들고 있으면 마치 연금처럼 배당을 나눠주는 AT&T 같은 회사의 주주들은 한 푼 두 푼 배당금을 아껴 추가로 주식을 사들이는 게 영 감질났다. 그렇게 대출을 받아 달러를 증시에 밀어 넣는 은퇴자들 역시 양산됐다.
일단 빌리고,
팔아서 갚았다.
그리고 문제는 없었다.
어쨌든 주가는 계속 올랐으니까.
디지털 숫자로만 존재하는 자산은 계속해서 늘어갔다.
제로 금리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기업들이, 빚을 지면서도 걱정이 없었던 심리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금리에서 기인했다.
2008년의 금융 위기는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로 인해 부실해진 금융기관에서 시작됐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금융 기관이 돈을 갚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이들이 돈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는 살려놔야 했다. 그래야 모두가 살 수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어마무시한 규모의 돈을 퍼붓는 것이었다.
마냥 돈을 풀어 빌려준다고 돈이 돌지는 않는다. 공짜로 퍼주면 모를까. 그래도 성실한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을 투입하는데 공짜로 퍼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거의 공짜'로 돈을 풀었다.
제로 금리의 시작이었다.
온갖 곳에 돈 폭탄이 떨어지자 모두가 다시 행복해졌다.
받을 돈을 회수했고, 주식도 샀고, 자동차도 사고, 집도 다시 사고, 가전 제품도 사고, 여행도 가고, 스마트폰으로 인스타도 하고, 어라 암호 화폐라는 게 생겼네 그것도 좀 사보고, 자동차가 전기로 가? 그것도 좀 사보고. 그렇게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와 다시금 번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러한 행복과 번영은 중국이 있어 실현 가능했다.
화장실 청소를 해보자. 배수구 컨디션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물이 잘 빠지는지 확인하지 않고 냅다 물을 퍼부으면 곧 물이 흘러넘쳐 난장판이 된다. 돈도 마찬가지여서 풀려나갈 돈이 흘러들어가 한동안 묶일 곳이 있어야 한다.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뿌리면 시중에 돈이 흘러넘쳐 물가가 급등하고 시장은 난장판이 된다.
돈이 어디론가 흘러들어가 한동안 묶일 곳.
그곳이 중국이었다.
극도로 단순화 하자면 미국과 중국은 서로 분업을 했다. 우린 사줄게, 너흰 만들어. 그렇게 미국은 중국에 오더를 줬고, 중국은 오더를 받아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한 중국에게 미국은 열심히 돈을 찍어서 줬다. 그런데 돈은 미국 시장에서 돌아야 한다. 돈을 중국에서 다시 가져와야 한다. 달러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미국은 중국에게 국채를 건넸고, 중국은 받는 족족 "쎼쎼" 하며 달러를 다시 건넸다. 이렇게 달러와 국채는 하염없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고 갔다. 그리고 그들이 달러와 국채를 주고 받는 동안, 중국의 원자재와 제품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들을, 세계인들을 풍요롭게 했다.
아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기.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의 분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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